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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무비(시나리오와 함께 보기)

그날, 밤

대본을 너무 늦게 줘서 인물 분석은커녕 상황 분석마저도 제대로 할 시간을 못 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부랴부랴 리허설 갖고, 의도에 따른 새로운 디렉팅을 하다 보면

매번 혼란에 빠지는 배우들을 보게 됩니다.

그나마 짧은 시간에도 감독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연기를 해주는

배우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주에 스튜디오 공간을 계약해서 앞으로 촬영 장소에 대한 고민은 조금 덜 것 같긴 한데

언제쯤이면 여유롭게 대본을 뽑고, 캐스팅을 하고 후반 작업을 할 수 있을까요?

혼자 프리부터 포스트까지 작업을 하기엔 많이 버겁긴 하네요.

그래도 화이팅하겠습니다!

 

 

그날 밤

 

등장인물

인범 (검은 옷)

선흥 (하얀 옷)

 

1. 옥상

 

평상 위에 소주병이 탁 하고 놓인다. 그 앞에 털썩 앉는 인범, 땀에 흠뻑 젖어있다.

왼손으로 (상처 입은듯한) 오른손을 움켜잡고 소주병은 가슴에 안은 채, 뚜껑을 입에 물고 입으로 돌려서 딴다. 뚜껑을 ''하고 뱉어내고 소주 반병을 단숨에 목구멍으로 털어넣는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주를 인상을 찌푸리며 느끼다가 살짝 구역질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아낸다. 소주병을 옆에 내려놓고 멍하니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 옆으로 선흥이 스스륵 나타난다. 이웃집에 소리가 들릴까봐 소리 죽여 속삭이듯 이야기를 시작하는 두 사람.

 

선흥 그렇게 술 마시면 죽어.

인범 (신경 안쓰고)

선흥 힘들어?

 

들은 채 만채, 인범은 고개 돌려 바닥에 놓은 소주병을 들어 본다. 반쯤 남은 소주를 찰랑찰랑 흔든다.

 

선흥 (소리) .... 잘 못하잖아?

인범 (술병 들어 또 한모금) 따라다니지 마.

선흥 그런다고 잊을 수 있겠어?

인범 ....

선흥 화를 내야하는 건 난데 형이 왜 이러고 있어?

인범 ...사과 받고 싶어?

선흥 할 생각은 있고?

인범 ...아니

선흥 그것 봐

인범 내 잘못은 인정해.

선흥 ....

인범 그런데 너한테 용서를 구하지는 않겠어

선흥 ....대단하네. 잘못은 맞지만 용서는 빌지 않겠다고?

인범 (한모금 마시고) 결과적으로는 내 잘못이지만 원인 제공은 네가 한거야.

선흥 아무리 원인 제공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거 아니야? 어찌됐건 용서는

빌어야 도리에 맞지. 잘못했습니다....해 봐. 혹시 알아? 내가 받아줄지?

인범 지랄하지마. 절대로 너한테는 용서 빌지 않아.

선흥 에이...너무 하네...그래도 이건 아닌데...

인범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 넌 나처럼 안 그랬을 거 같아?

선흥 ....((상처 부위에 따라) 자기 목을 쓰다듬는다, 또는 머리를 쓰다듬는다)

인범 난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결정을 할거야.

선흥 ....그래 생각해 보면...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면....

형하고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긴 해.

내가 좀 심했지?

인범 ...그랬어?

선흥 왜 그랬냐고?.......(기쁨,분노,슬픔의 표정 변화를 길게 보여주고) 좋아했으니까

 

인범, 그 말에 욱하고 선흥을 바라본다.

 

선흥 (태연하게) 좋아하니까... 내꺼로 만들고 싶었어....그래서 어쩔수 없었어.

인범 (버럭) 그게...(주변 눈치 보고 다시 소리 죽여서) 말이 돼?

선흥 그래. 좀 심하긴 했지.....내 잘못을 인정할게.

인범 지금, 잘못을 인정한다는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너 때문에 상처받은 수현이는 어떡하려고?

그냥 미안해? 그저 미안해 한마디로 그 상처 지워낼 수 있을 것 같아?

선흥 늦었어?

인범 .....

선흥 ...괜찮아. 형도 많이 늦은 것 같으니까...

 

벌떡 일어나서 난간으로 간다. 아래를 내려다 본다. 아찔하다

 

인범 이제 어떡해야할지 모르겠다

 

카메라 앵글이 이동하면 그 옆에 선흥이 서있다.

 

선흥 나도 잘못했고 형도 잘못했고.....우리 둘이 일대일 동점으로 칠까?

인범 씨발. 난 너한테 잘못한거 없어.

선흥 ...... 쎈데?

 

인범은 선흥을 마주 보고 때릴 듯이 오른손 주먹을 들어 올리는데 통증이 온다. ''하는 단발 비명과 함께 들었던 주먹 떨구고 분한듯한 모습으로 서있다. 깔깔 웃으면서 평상으로 가는 선흥.

 

선흥 하하하하. . 이리 와. , 아직 남았네.

 

인범, 분한 얼굴로 선흥을 보다가 터벅터벅 걸어와 평상에 걸터 앉는다

 

선흥 마셔.

인범 그래..., 마신다..... 이 마지막 한모금 마시고.... 경찰에 신고하겠어

선흥 신고? 하하하하 진짜?

인범 그래. 신고 한다.

선흥 에이. 신고는 무슨...그러지 말고 도망가.

인범 그럴순 없어. 그렇다고 너한테 용서를 비는 건 아니야. 수현이를 위해서.....

선흥 오오~ 의리남? 멋지네. 그런데 그렇다고 신고는 좀 오바다.

인범 아니!

 

마지막 술 입 안으로 털어넣고, 전화기를 꺼내 112를 누른다.

 

선흥 오오~ 112? 진짜네? 하하하. 진짜 신고를 하네?

 

인범,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가대면, 계속 비웃던 선흥은 스르륵 사라지고 웃음 소리만 정적을 가른다. 신호음이 멈추면 (주변의 모든 소리도 멈춘다)

 

인범 여기......사람이 죽었습니다

.......살인 사건입니다.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평상 뒤쪽에 피투성이가 된 선흥의 주검이 노려보듯 인범을 바라보며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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